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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대인의 이름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는 계층에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고유어 이름을 써 왔다. 이들 이름은 대부분 여러 음절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한자로 차자 표기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발음법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지배 계급에서 중국식 성명을 채용함으로써 고유어 이름은 지배 계급에서 점차 사라진 반면,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여자들이나 평민 이하의 일반 백성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고유어 이름이 계속 사용되는 경향을 보여, 계층에 따른 차등을 보였다.


2.원 지배 하의 몽골식 이름(고려)
원나라의 고려 내정 간섭기에는 고려 국왕이 몽골식 이름과 고려식 이름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29대 충목왕(몽골어: 八思麻朶兒只), 30대 충정왕(몽골어: 迷思監朶兒只), 31대 공민왕(몽골어: 伯顔帖木兒 파이엔티무르) 등으로, 한자 표기된 몽골식 이름을 가졌다.


3.일제 치하의 일본식 성씨
일제 강점기에는 창씨개명이라 하여 일본식 성명 강요가 있었다. 창씨란 씨를 새로 만든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조선식 성명과 일본식 씨명(氏名)의 개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부계 혈통을 표시하는 성이 없고, 가계를 표시하는 씨만 있다. 일본식 씨명은 일가족이 모두 가장과 동일한 씨(氏)가 된다. 따라서 예를 들어 가장이 김(金)을 씨명으로 쓸 경우, 이씨 성을 가진 부인은 가장과 동일한 김씨(金氏)가 되어야 했다. 이것은 성이 바뀌지 않고, 동성끼리 혼인하지 않으며, 이성의 아이를 입양하는 습관이 없는 조선의 전통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창씨개명 당시 이를 홍보하는 일본 관리들은 호적상 조선식 성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옛 조선 호적의 본관을 '성명 및 본관'으로 표기하여 참고 정도로 하고, 일본식 씨명을 전면에 배치하여 이 씨명만을 공식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사실상 조선식 성명을 폐기하고자 하였다. 이를 거부한 경우 각종 불이익(입학 및 진학 거부, 취직 불편화, 관청의 용무 금지 등)이 뒤따랐다. 창씨한 사람 중에는 원래 성의 의미를 살리고자 궁리한 경우가 많았다.


1)원래 성의 글자가 포함된 일본 씨명을 찾거나 일본풍으로 만드는 방법
김(金)씨는 金本 가네모토, 金子 가네코, 金山 가네야마
장(張)씨는 張本 하리모토, 張山 하리야마
2)본관을 씨명으로 하는 방법
光山 미쓰야마(광산 김씨)
3)시조의 설화를 토대로 하는 방법
新井 아라이, ?本 구니모토,
4)일본의 씨명과 같아 그대로 쓰는 경우
林 하야시(임), 南 미나미(남), 柳 야나기(류/유), 吳 구레(오)
5)일본인들이 숭배하는 천황가나 쇼군가 등 명문가문의 씨성을 쓰는 경우
?川 도쿠가와, 豊臣 도요토미, 若松仁


4.일제 치하의 일본식 이름
중장년층 여성 중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영향으로 일본식 성명의 영향을 받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자”(子)로 끝나는 이름이다. 특히 자로 끝나는 이름이 많은 것은 전통적인 남아 선호 사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식 성명은 주요 개명 사유 중의 하나이다. 남자의 경우는 보다 드물지만, 마지막 음절의 “-랑”(郞) 등이 일본식 성명의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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