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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사외보 2002. 3.17
조상의 지혜 전하는 바람(風)과 물(水)의 전도사 (글 이주영 구성작가)

몸도 마음도 청명한 가을하늘을 따라 높아지기만 하는 어느 일요일 한낮. 충남 예산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채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 텐데, 그는 지도를 펼치고 무언가를 살피고 있었다.

점심은 호밀빵 샌드위치. 일요일에도 강의준비와 방송준비로 바쁜 그가 사람 좋은 웃음으로 한 조각 권하는 샌드위치를 들고 평상에 마주 앉았다. 벌레 먹은 괴목이 턱하니 누워 책상 노릇을 하고 있었다. 풍수도 풍수지만 원래 전문은 정자순례였다면서 평상을 정자라고 우스갯소리를 건넨다.

「이야기로 풀어보는 풍수기행」은 「최창조의 풍수기행」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10월 25일부터 새롭게 방송됐다. 고제희 풍수전문가가 MC로 합류한 것은 11월 1일부터. 프로그램 명칭이 바뀌는 것 이외에도 많은 변화가 프로그램 곳곳에서 보인다.

「최창조의 풍수기행」이 산업화와 현대화의 물결에 치여 병들어가고 있는 국토를 보호하자는 '비보풍수(裨補風水)'의 견해를 주로 펼쳤다면 「이야기로 풀어보는 풍수기행」에서는 일반적인 풍수사상을 기본으로 해 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형세를 살펴본다.

  흔히 풍수라고 하면 좌청룡이 어떻고 입수가 어떻고 하는 소리에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거나 발복(發福)을 바라는 얼토당토않은 미신이라고 쉽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외면하거나 비판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이 같은 편견을 누구보다고 잘 알고 있는 듯 그는 "풍수는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고 단언한다.

  무덤 자리나 보러 다니는 것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에 대해서 그는 할말이 많다. 집 하나를 보러 가더라도 북향인지 남향인지, 시끄럽지는 않은지, 물이 새지는 않는지 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풍수도 마찬가지다. 양택(陽宅)이 산 사람이 살아갈 곳을 찾는 것이라면 음택(陰宅)은 죽은 사람이 누울 곳을 찾은 것. 결국 사람을 위한 터잡기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살아 계신 부모를 위해 좋은 집을 얻듯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좋은 묏자리를 구하는 것이 같다는 얘기다. 후손의 발복은 두 번째이고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의 평안이라는 이야기.


마을과 옛집에 들러 선현들을 만나다

  앞으로 「이야기로 풀어보는 풍수기행」은 이처럼 우리들이 살아가는 우리 지역에 관해 이야기가 주가 될 예정이다. 매일 지나치던 정겨운 앞산과 뒷산이 우리 마을을 보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작은 개천의 흐름이 마을을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을 알아 가는 기쁨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택(古宅)을 통해 역사책 속에서 잊혀졌던 선현들이 이웃으로 살아 돌아오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결국 그가 말하는 풍수란 사람과 터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신체에는 조상들이 남겨놓은 '체질'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몸 자체가 하나의 역사책인 것이다. 그 성질에 맞게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 왔는데 채 몇십 년만에 물밀듯이 들어온 서양의 의식주에 맞추려고 했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고택은 결국 우리가 돌아가야 할 우리 주거형태의 원형이다. 그 원형을 찾아가는 작업을 같이 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이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지역의 형세, 고택에 이어 세 번째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노거수(老巨樹)다. 고택과 함께 수백 년 묵은 노거수가 위치한 장소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생각이다. 노거수가 잘 자랄 수 있는 마을이라면 사람 또한 잘 살 수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노거수가 있는 마을 대부분이 장수촌이라는 선생의 말이 뒤따른다.


조상의 지혜를 전하다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호암미술관 소장품 관리팀장으로 발령 받으면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모르는 것을 알아간다는 기쁨에 힘든지도 모르고 일에 전념했다. 평일에는 회사에 출근해 문화재의 내력을 알아가느라 바쁘고 주말에는 전국 각지의 정자를 찾아다니며 유래와 역사적인 가치들을 알아나가는 작업들을 해왔던 것.

  "정자를 보러 다니다 보니 누각에 적힌 산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란 말입니다. 그리고 나니 그걸 쓴 사람에게 관심이 쏠리더군요. 그래서 유택(幽宅: 죽은 이의 집이라는 뜻으로 '무덤'을 달리 이르는 말)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책까지 쓰게 됐어요."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 그를 풍수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3년 동안이나 전국 각지의 유택을 찾아 다녔지만 풍수를 이야기하지 않고서 유택을 이해할 수는 없었던 것. 사람을 만나기 위해 유택을 찾는다는 것이다. 황희 정승의 묘에는 청백리로 이름난 그의 인품을 닮은 듯한 문인석(文人石)을 만날 수 있고 율곡 이이 선생의 묘에 가면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던 조상의 지혜와 만날 수 있다.

  안정된 샐러리맨에서 문화재 전문가로, 다시 '험난한' 풍수 전문가로. 평범하지 않은 행보에서 그의 고집과 신념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단지 조상들의 삶에서 지혜를 빌리는 일이 너무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BS


글 이주영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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