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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97년 06월 27일자 인터뷰 기사
샐러리맨이 발굴한 '무덤의 美學' (김태익 기자)

한 샐러리맨이 3년동안 거의 매주 방방곡곡 선현들의 묘를 찾아 다니고, 그 답사의 기록을 3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최근들어 전국에 흩어진 문화유산을 안내하는 책자 발간이 붐을 이루고 있지만 묘소를 문화유산의 하나로 격상, 그에 얽힌 이야기를 책으로 묶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그런 의미에서 고제희(39·삼성문화재단 문화사업실과장)씨가 쓴 「한국의 묘지 기행」(전3권·자작나무간)은 여행과 인물, 그리고 죽음이라고 하는 매력적인 세개의 주제가 한 데 어우러져 빚어낸 희귀한 역사에세이라 할 만하다.

무덤이라는 것은 그게 누구의 것이든 삶의 욕망과 성취를 한번쯤 뒤집어 생각하게 하고, 자신의 삶의 주변을 되돌아보게 하는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고씨가 이 책에서 찾아간 역사인물의 묘소는 1백30곳. 충남 천안의 한명회 홍대용 유관순 박문수 김부용 이시백의 묘소를 시작으로 당대를 풍미했던 정치가와 명유(명유), 천하를 호령했던 장군에서 뭇사내의 애간장을 태웠던 명기(명기)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채롭다.

전국 각지를 지역별로 나눠 묘소의 위치도를 그려넣고 묘소의 현장분위기와 처음 찾았을 때의 감상 등을 엮었으며, 여기에 각종 사서-문집에서 뽑은 묘소 주인공의 행장 업적 등을 정리, 자연스럽게 인물을 통한 역사기행이 되도록 서술을 했다.

경영학과를 나와 한 재벌회사에서 경리통으로 꼽히던 고씨가 역사인물 묘지 기행에 나선 것은 애초엔 샐러리맨의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경기-중부 지방의 정자를 답사하기 시작했으나 결국 정자 주인의 삶에 관심이 쏠리면서 묘지 탐방으로 방향을 바꿨다.

『한번 묘지를 답사하고 오면 책을 통해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역사적 인물이 허상의 삶이 아니라 나와 같이 이땅에서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았던 실제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 좋았습니다. 갔다와서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이 엄청나게 가깝게 다가오더군요.』

고씨의 묘지 기행이 흥미있는 것은 답사 대상이 반드시 위인과 영웅의 무덤에만 한정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딱딱한 역사서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감흥이다. 조선초를 풍미했던 처신의 귀재 한명회는 죽어서 부관참시당하는 불명예를 겪었는데 지금은 신도비의 비문마저 누군가에 의해 뭉개져버렸다고 한다.

조선조 5백년 청백리의 표상 중 한사람으로 꼽히는 오리 이원익 대감은 별세할 때 비바람 가릴 집 한칸 없고 모실 관 하나 없었지만 주민의 사랑속에 경기도 광명에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안동김씨 세도정치 하에서 빼어난 외모로 천하를 주름잡았던 나합의 묘는 충남 아산에 있으나 아무도 돌보지 않아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인 반면, 열아홉 청춘에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는 후세 사람들에 의해 두개의 사당을 지어받았다. 조선 선조때의 문장가 최경창의 묘(경기도 파주)는 시를 통해 사랑을 나누던 기생 홍랑의 묘와 나란히 있어 이채롭다. 최경창이 죽은 후 9년 동안이나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살며 조석 음식을 올린 홍랑에 대한 후손의 보답이다.

『만들어질 당시엔 심산유곡에 있었을 무덤이 많은 경우 도로나 아파트 등 대형 공사때문에 이장하거나 파손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역사인물의 묘소는 그 자체 문화재라는 생각이 확산됐으면 좋겠습니다.』

고씨의 다음 계획은 전국 정자(정자) 답사기를 책으로 엮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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